퇴사 이후 각자의 선택은 갈라집니다. 어떤 친구는 다시 회사를 선택했고, 나는 아직 조직 밖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친구의 선택을 바라보며 흔들린 감정과, 비교 속에서도 나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의 말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친구가 다시 회사를 다닌다고 했을 때, 나의 마음은 복잡했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다시 회사 들어갔어. 생각보다 빨리 결정하게 되더라.”
그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겉으로는 “잘 됐다, 축하해”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퇴사했고,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나누던 사이였습니다. 함께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라고 말했고, ‘우리 진짜 하고 싶은 거 해보자’며 다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다시 출근길에 서 있는 친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아직 여기에 머물러 있을까?”
“혹시 내가 더 늦어진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비교에서 비롯된 조용한 흔들림이었습니다. 특히 ‘정해진 루트’로 다시 들어간 친구와, 여전히 방향을 잡고 있는 나의 모습이 교차되며 마음 한편이 조급해졌습니다. 나보다 한 발 앞서 나아간 것 같은 그의 결정을 보며, 나의 지금이 불완전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내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길을 걷고 있어”, “난 아직 이 삶을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되뇌며, 불안을 애써 눌러 담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비교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기
비교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같은 선택을 했던 사람일수록, 그 이후의 행보를 마주할 때 흔들림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다시 회사를 선택하고 정기적인 수입과 명확한 소속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실험 중인 내 삶을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게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곱씹다 보면,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친구는 친구의 속도로, 나는 나의 방식대로 걷고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 그는 다시 조직의 리듬 속에서 안정을 택했고, 나는 여전히 나만의 리듬을 찾기 위해 더디지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비교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를지 말지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비교가 고개를 들 때면 이렇게 말해봅니다.
“나는 지금 내 리듬에 맞게 살아가는 중이야.”
“더디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친구의 선택은 그의 정답이고, 나의 정답은 따로 있을 수 있어.”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는 건, 단순한 자기위안이 아닙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붙드는 작은 닻 같은 말들입니다. 누군가의 정답이 내게 꼭 맞는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교는 조금씩 흩어지고, 내 자리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흔들림 속에서도 내가 선택한 삶을 신뢰하는 법
지금 나는 여전히 조직 밖에 있습니다. 명확한 직함도 없고, 정해진 월급도 없습니다. 대신 조금은 낯설지만 자유로운 삶, 불완전하지만 주도적인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친구가 다시 회사를 선택했을 때, 나는 ‘그래도 나는 내 선택을 믿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이 삶이 영원히 이어지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식의 일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나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간 친구의 삶도, 계속 조직 밖에 있는 나의 삶도, 어떤 것이 더 옳거나 틀리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삶은 단지 선택의 연속일 뿐이고, 그 선택이 나를 더 이해하게 만들고, 다음을 준비하게 만드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시간을 채워갑니다. 작은 루틴을 지키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배우고,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느리고 불확실한 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겐 이 시간이 가장 솔직하고 진짜인 시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