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와, 너는 진짜 무계획으로도 잘 사는구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날은 회사에 다니던 시절보다 훨씬 더 촘촘한 계획과 선택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글은 겉으로는 유연하고 느슨해 보이는 삶 안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철저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계획이 없어 보일 뿐, 루틴은 더 정교해졌다
“퇴사하고 뭐 해?”“딱히 뭐는 아니고, 그냥 프리하게 살고 있어.” 이렇게 대답하면 대부분은 느긋한 생활을 상상합니다. 늦잠, 카페, 노트북, 산책, 그리고 ‘나만의 시간’.하지만 실제로 나의 하루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철저하게 시간 단위로 나뉘어 있습니다. 오히려 직장에 다닐 때는 외부의 리듬에 맞춰 살았기 때문에, ‘루틴을 스스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출근 시간, 회의, 점심시간, 마감… 하루가 자동으로 굴러갔고, 그 속에서 조금씩 쉼을 끼워 넣으면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일정을 정해주지 않기에, 나 스스로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하지 않으면 하루는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일요일이면 일주일의 콘텐츠 목표, 예상 수입 흐름 체크, 할 일 분할과 우선순위 정리, 루틴 관리 (기상, 식사, 운동, 학습 시간 등), 같은 계획을 엑셀에 적고 스스로에게 일감을 부여합니다. 누가 보기엔 ‘한량’처럼 살아도, 실제로는 시간 하나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한 내부의 노력으로 하루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유의 이면에는 셀 수 없는 셀프 피드백이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성과에 대한 평가가 자동으로 주어졌습니다. 상사의 피드백, 회의에서의 반응, 팀원들과의 비교 등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신호가 외부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누구도 나의 하루를 검토해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고, 다음 단계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스스로 피드백을 남깁니다.“오늘 집중이 잘 되었는가?”, “시간을 쪼갠 기준이 적절했는가?”, “무엇이 흐름을 끊었는가?”, “내일은 어떻게 보완할까?”
이러한 자가 점검은 때때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만의 성장 트래킹 방식이 되어줍니다. 실패에 대해 책임을 미룰 대상도 없기에, 모든 흐름과 결과를 나 스스로가 감당하고 조율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유’라는 이름 아래 놓인 삶은 훨씬 더 높은 자기 인식과 결정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외부에서 보기엔 자유롭고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엔 꾸준한 자기 조율과 방향 재설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삶은 결코 무계획적이지 않습니다.
진짜 자유는 철저한 선택 위에만 존재한다
사람들은 종종 “너는 좋겠다, 자유롭고”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나는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수많은 불확실성과 계획의 대가 위에 얹힌 결과입니다. 나는 지금도 매달 수입을 예측해야 하고, 생활비와 미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스스로의 동기와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내면을 점검해야 합니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말은 멋져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실패와 시도,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길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반을 설계하는 데 드는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 프리한 삶은 무계획의 삶이 아니라,‘고정된 틀 없이도 굴러가기 위한 고도의 설계’가 필요한 삶이라고요. 내가 이 삶을 선택한 이유는 자유 때문이지만, 그 자유를 진짜로 누리기 위해서는 더 정밀하게 나를 설계하고 다뤄야 한다는 것을 매일 실감하고 있습니다. 프리한 삶은 겉으로는 느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철저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계획 없이 사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계획으로 나를 지탱하고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하고 멋진 선택이라는 걸 이제는 스스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프리한 삶은 느슨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철저히 관리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겉보기엔 가벼워 보일 수 있어도, 그 속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계산하고 조율하는 나날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 느슨해 보이는 계획 속에서 묵직한 자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