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언제나 내 편이라고 믿지만, 때로는 그 조언이 조용한 흔들림이 되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퇴사 이후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던 중,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글은 응원과 걱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감정,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나를 붙잡으려 한 기록입니다.

 

부모님의 한마디에 다시 흔들린 날
부모님의 한마디에 다시 흔들린 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니?”라는 한마디

 

어느 날, 오랜만에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밥상 너머로 건넨 말은 짧고 담백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니?”
질문은 짧았지만, 마음에 남긴 울림은 컸습니다. 그 말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걱정, 안타까움, 조바심, 기대… 부모님은 아마도 정말 걱정하는 마음에서, 혹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찾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작아지고 움츠러들었습니다. “이렇게”라는 단어가 찔렸습니다. 아무 직장도 다니지 않고, 뚜렷한 성과도 없으며, 매달 수입이 들쭉날쭉한 지금의 내가 부모님 눈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존재로 보였겠지요. 그 말은 단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내 현재를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나의 삶은 계획적이지 않고, 보장된 미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을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습니다.‘내가 틀렸던 걸까?’, ‘이 삶은 어른의 기준에선 너무 유약한 걸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응원이지만, 때론 너무 무거운 마음

 

부모님의 조언은 언제나 사랑에서 시작되는 말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말이, 때론 가장 무거운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퇴사 후처럼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시기에는 그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니가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현실도 좀 봐야지.”“젊을 때는 고생하는 거야.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아.”“너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렇게 산다.”

이런 말들 앞에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입니다. 왜 나는 이 말을 듣고 안심이 되지 않을까? 왜 자꾸만 ‘내가 이상한 길을 걷고 있나’라는 자책이 생기는 걸까?

생각해 보면, 부모님 세대는 지금의 나 같은 삶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버티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를 살았고,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안정의 상징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에겐 ‘회사를 나온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며, 그 이후의 삶은 늘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압니다. 그 말이 잔소리가 아니라 나를 향한 깊은 애정이라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언은 나를 위축되게 하고, 스스로를 다시 평가절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지만 부담이 되는 이유였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나를 다잡는 연습

 

그날 이후 나는 조용히 나를 돌아봤습니다. 내가 걸어온 시간, 그 안에서 얻은 것들, 아직 명확한 결과는 없지만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자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부모님의 조언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다시 취직하라 하실 것이고, ‘그래도 안정된 게 낫다’고 하실 겁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흔들림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시 붙잡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 내가 지키고 있는 루틴을 스스로 칭찬하기
  • 내가 만든 결과물이 비록 작아도 그 가치를 스스로 알아주기
  • 내 선택이 얼마나 용기 있는 결정이었는지 다시 되새기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시선으로 내 삶을 판단하지 않고, 내 시선으로 내 시간을 바라보는 연습. 그것이 결국, 내가 이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한마디는 가끔, 나를 멀리 데려갑니다. 이미 수없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눴음에도, 그 한 문장이 나의 의심을 다시 불러오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압니다. 그 말이 나를 위하는 말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다시 나를 믿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요.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 중심을 잡고 돌아오는 그 연습을 멈추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