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이전에는 당연했던 관계들이 하나둘 멀어졌습니다. 조직이라는 틀이 사라지자 유지되던 관계도 흐릿해졌고, 그 틈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 글은 퇴사 후 변화한 인간관계 속에서 겪은 거리감, 상실감, 그리고 다시 찾아온 소중한 연결에 대한 기록입니다.

퇴사 후 인간관계의 변화: 연락 끊긴 사람들, 다시 연결된 사람들
퇴사 후 인간관계의 변화: 연락 끊긴 사람들, 다시 연결된 사람들

 

 

퇴사와 함께 사라진 관계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도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과 매일 인사를 나누고, 일정을 조율하고, 점심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중 몇몇은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퇴사를 앞두고 인사를 하면서 “꼭 연락하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오갔고, 나 역시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퇴사 후 첫 한 달 동안은 문자 하나 받지 못했고,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관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매일 마주치며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들과의 끈이,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이렇게도 허무하게 끊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중에는 정말 아쉬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을 공유했던 동료, 자주 커피를 나눠 마시던 파트너, 고민을 털어놨던 선배까지. 이제는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멈춰 있고, 그들은 여전히 그 일상 위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거리감은 더 커졌습니다.

처음엔 그들이 나를 잊은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회사’라는 접점이 있었기에 유지됐던 것이었고, 그 기반이 사라진 지금, 유지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서운함보다는 이제는 조금 덤덤해졌습니다. 애초에 억지로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음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외로움의 무게를 감당하는 시간

 

퇴사 후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 중 하나는 외로움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누군가와 대화하고, 누군가가 내 존재를 인식해 주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퇴사 이후에는 그 일상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겼고, 심지어는 며칠 동안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은 날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는 건 익숙했지만, ‘잊혀지는 기분’은 낯설고 아팠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느낌, 연락이 오지 않는 날들,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 속 바쁜 일상과 나의 공백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유난히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았지만, 혼자 조용히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자꾸 작게 느끼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먼저 연락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치 ‘퇴사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괜히 주눅이 든 채, 누군가에게 나를 먼저 드러내는 일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혹시 불편해하지 않을까, 혹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섰고, 그렇게 인간관계는 더 닫혀만 갔습니다.

그 시기의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음'의 외로움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정체성의 외로움이었습니다.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졌던 소속감이 사라진 자리에, 진짜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반드시 지나야 할 과정이었습니다.

 

 

다시 연결된 사람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고 나서, 조심스럽게 몇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연락을 기다리기만 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직접 메시지를 보내고, 가볍게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따뜻하게 반응해 준 사람들이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마치 어제 본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회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었고, 퇴사 후 나를 먼저 기억해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관계는 꼭 오래 알고 지낸다고 해서 깊어지는 게 아니며, 생각보다 가까운 인연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퇴사 이후 새롭게 연결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퇴사한 지인, 글쓰기를 시작하며 알게 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람들, 우연히 시작한 클래스에서 마주친 이들. 이들은 직업이나 성과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는 새로운 연결이었습니다. 그 관계는 느슨하지만 진심이 느껴졌고, 그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조금씩 옅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연락 끊긴 사람들'에 대해 아쉬워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계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머무르고 때론 멀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것이라고요. 퇴사 후에 잃은 것도 있었지만, 그 빈자리에 새로이 피어난 관계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간관계는 ‘수’가 아니라 ‘밀도’가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퇴사 후 인간관계는 새로운 리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어떤 관계는 멀어졌고, 어떤 관계는 다시 이어졌으며, 어떤 관계는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외로움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사람들과 어떤 연결을 원하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해 준 기회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관계, 같이 침묵해도 편안한 관계,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 몇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